Red 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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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바람, 그리고 너

몽치(@mongchi_cmcm)님 타로 커미션


매미가 울었다. 여름이었다ー

 
에이스는 이번 여름 방학을 그닥 기대하고 있지 않아요. 집으로 돌아가면 또 형에게 시달려야 할 거라느니, 동생의 삶은 고달프다느니 하며 투덜댑니다. 물론 진심은 하나도 담겨 있지 않지만요. 에이스에게 있어서 여름 방학은 유우와 만날 수 없는 기간이에요. 동시에 유우가 어딘가로 사라져버리지 않을 까 걱정해야 하는 기간입니다. 에이스는 아직도 어느 날 유우가 보낸 문자를 기억하고 있어요. 스카라비아 기숙사에 갇혔다는 문자는 제대로 끝맺음도 못한 채로 에이스에게 당도했고, 에이스는 그 길로 즉시 저금통을 털어 학교까지 달려왔습니다. 그 이후로 여름만 되면 유우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지 않을 까, 뜨거운 햇살에 그대로 녹아버리진 않을까 하는 얕은 걱정이 감돌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유독 여름 방학을 싫어하는 눈치네요.

여름 방학이 기대되지 않는 건 유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몇 번째 겪는 여름 방학인지, 어느 순간부터 유우는 셈을 포기했어요. 이번 여름 방학에도 할 일이 많습니다. 낡은 기숙사 청소에, 크로울리에게서 받은 잡무에... 이번 여름 방학에도 홀로 낡은 기숙사에서 보내야 할 겁니다. 모두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학교가 텅 비는 기간, 유우는 그 시간이 지겹도록 싫었어요. 이 세상에서 자신이 혼자라는 느낌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그런 유우와 함께해주는 그림이 있어 다행이지, 그림마저 없었다면 유우는 정말 미쳐 버렸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이번 방학도 잘 견디고 견뎌서, 친구들이 학교로 돌아오는 순간을 기쁘게 맞이할 것입니다.

그렇게 별 기대 없이 시작된 여름방학이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유우에게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바로 에이스가 낡은 기숙사에 놀러 온 거예요. 가족끼리 현자의 섬에 바캉스를 왔는데, 마침 유우의 생각이 나서 들렀다나요. 에이스는 부모님 허락도 받고 왔으니, 오늘 하루는 낡은 기숙사에서 자고 가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갑작스런 방문, 갑작스런 제안. 루프의 안정성을 중시하던 이전의 유우였다면 가장 기피하고 싶었던 상황이겠지만 어쩐지 이번엔 그렇게 싫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누군가 찾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에이스가 어떻게 알고 온 것인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마음을 읽는 마법이라도 익힌 걸까요. 유우는 기쁘게 에이스의 방문을 맞이해요.

왜 하필 바캉스를 학교가 있는 곳으로 오냐며 투덜대는 에이스와, 새삼스럽게 자신과 그림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집을 채우자 들뜬 유우입니다. 두 사람은 함께 쿠키를 먹고, 영화를 보고,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요. 에이스는 이번에 중학교 친구들과 만났는데, 그 곳에서 자기한테 고백했던 여자애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유우에게 꺼냅니다. 유우는 그런 이야기들이 마치 자신과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아서, 드라마를 보듯 빠져들었어요. 매일이 다른 생활, 루프하지 않는 삶, 언젠가는 유우에게도 찾아오겠거니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유우의 반응을 떠 보려고 한 건데, 생각보다 유우가 덤덤하게 나와서 괜히 말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마 에이스 머릿속은 엄~~청 복잡할 거예요. 유우는 진짜 자신을 편한 친구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유우의 앞에서 너무 어린애처럼 군 건 아닌지 여러모로 곤란해 보입니다. 유우는 다양한 경험을 한 에이스가 부러워서 정말 아침드라마 보듯 이야기를 들어 준 것 뿐인데도요. )  

에이스는 유우에게 있어서, '매일이 다른, 루프하지 않는 삶'의 체험판을 보여주는 사람이에요. 에이스와 있으면 매일이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요. 때문에 유우는 에이스에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낡은 기숙사를 찾아와 주어 고마워하고 있어요. 이를 에이스에게 말했다가는, 역시 이 오빠가 최고라느니 어쩌느니 하며 콧대가 높아질 게 분명해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해가 지자, 영화를 한 편 틀어 놓습니다. 에이스는 이번에 새로 개봉한 영화라며, 유우와 보려고 이제껏 안 보았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밝은 음악으로 시작하는 코미디 로맨스 영화. 어쩌면 뻔한 내용에 뻔한 결말일 수 있는 한 시간 삼십 분짜리 영상물, 그러나 유우에게 있어서 이 영화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유우는 그간 수 번의 여름 방학을 반복했지만, 지금까지 여름 방학 중에 영화가 개봉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거든요. 어쩌면 다음부터는 같은 여름 방학을 반복하지 않아도 될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루프를 벗어난 것일지도 몰라요. 어쩌면 유우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영화는 흘러갔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유우의 손을 에이스가 꼬옥 잡아 주었습니다.

에이스는 순간 놀랐어요. 유우가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복잡한 표정을 하곤, 화면 너머를 바라보는 것 같았거든요. 유우는 가끔씩 이렇게 에이스의 곁을 떠나곤 했습니다. 그리곤 에이스가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으면, 살짝 웃곤, 아무것도 아니라고 화제를 바꾸곤 했어요. 에이스는 유우의 이런 점이 싫었습니다. 기껏해야 동갑내기처럼 보이면서 혼자 어른스러운 척 하는 이레귤러. 분명 함께 있는데도 함께 있지 않은 것 같은 이 순간이 너무 싫어서 에이스는 자꾸만 유우를 현실로, 에이스의 곁으로 끌고 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요. 유우가 이대로 자신이 모르는 세계로 떠날까 두려워 끊임없이 유우를 부르고, 유우에게 어울릴 옷을 추천해 자신의 기억과 흔적을 남기려 들어요. 멋모르는 유우는 에이스의 흔적을 고스란히 받아 줍니다.

결국 유우는 영화의 내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 했어요. 그렇게 에이스가 잘 방을 안내해 주고, 에이스가 언젠가 생일 선물이라고 주었던 피어싱을 빼고, 에이스가 추천해 주었던 클렌징 폼으로 세수를 하고 침대에 눕습니다. 그리곤 생각해요. 유우는 에이스의 손을 잡음으로써 길고 길었던 토끼굴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 1%도 되지 않는 확률이었지만, 0%는 아니었기에 이루어진 거예요. 유우에게 있어서 에이스는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와도 같습니다. 유우는 쿵쿵 뛰는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잠에 들었어요.

에이스는 복잡한 표정을 한 채로 다음 날 돌아갔습니다. 유우는 루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그런 에이스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 했어요. 그대로 맞이한 개학, 학교는 다시 붐비게 되었지만 유우는 이 순간이 이전처럼 기다려지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왁자지껄한 친구들 없이도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게 가능해졌으니까요. 이번에야말로 루프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놀랍게도 유우는 모든 것이 새로워 보이기 시작합니다. 늘 가던 학교, 늘 걷던 길, 몇천 번이고 돌려봐 이제는 내용을 다 외운 교과서들 유우는 이대로 진급하고, 가능하다면 다른 선배들처럼 학외 연수를 갈 수도 있고, 어쩌면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 실낱같은 희망은 순식간에 불어나서, 유우를 행복에 퐁당 빠뜨려요.

하지만 에이스는 그런 유우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 날 영화를 본 이후로부터 갑자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거든요. 유우가 밝아진 건 좋습니다. 하지만 에이스의 바운더리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 같다는 느낌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어요. 그간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고 그렇게나 노력했는데, 유우는 아주 가볍게 그 선을 넘어 자신의 세계로 뛰어들어 버렸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 날 낡은 기숙사를 찾아가지 말 걸,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영화를 보여주지 말 걸. 이럴 줄 알았다면 유우에게 특별한 나날을 만들어주지 말 걸. 에이스는 자신이 제공하는 '특별함' 이, 유우가 루프 중에 있었기에 특별하게 느껴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루프에서 벗어난 이상, 에이스와 함께하는 나날은 더 이상 유우에게 특별하지 않아요. 유우에게는 매일이 새로우니까요. 에이스는 유우가 자신을 특별한 상대로 여겨주길 바랍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유우를 토끼굴 속에 두고 자신만을 바라보게 할 걸 그랬습니다 그런, 조금은 무거운 질투가 에이스의 마음에 내려앉아요.


추가질문


Q. 이후 유우가 에이스에게 호감을 많이 드러내나요?
A. 아무래도 에이스는 동급생이기도 하고, 붙어다니는 시간이 많아서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의지한다거나 많이 편하게 대하고 있어요. 에이스는 이걸 알기 때문에 유우는 자신을 믿고 있다고 좀 우쭐해 있습니다. 친한 친구에게 의지받는 건 기쁜 일이니까요. 동시에 유우는 자신이 루프에서 벗어난 원인이 에이스인걸 알고서 확실하게 호감을 표시해요. 일종의 감사를 전하는 것과도 같달까요. 그런데 이게 에이스에게는 좀 갑작스러워서, 에이스는 유우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착각하거나 겹쳐보고 있다고 오해합니다. 그래서 유우가 고백했을 때도 구태여 거절한 모양이네요.

Q. 에이스의 질투는 티가 많이 나는 편일까요?
A. 티가 많이 나요. 에이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요. 들뜬 유우에게 오늘 기분 좋아 보인다고 괜히 투덜대거나, 왜 오늘은 자기랑 같이 밥 안 먹느냐던가 상당히 사소하고 유치한 이유로 질투해요. 사실 에이스도, 그간 유우의 일순위였는데 갑자기 차례에서 벗어난 듯한 기분이 영 찝찝합니다. 완전 어미 닭을 쫓는 병아리처럼 굴던 게 하루아침에 곁을 떠나 하늘을 날고 있는 걸 보는 기분이에요. 처음에는 유우가 아닌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니까요.
이를 유우가 눈치채는 덴 시간이 좀 걸리지만 만약 알아차리게 된다면 에이스도 자신과 같은 마음인 줄 알고 고백하게 됩니다. 하지만 에이스는 유우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고 내색하진 않았지만, 유우는 제법 상처받는다고 해요. 때문에 당분간 에이스를 퉁명스럽게 대하기도 합니다. 

질투 에피소드라고 하면, 유우는 그동안 에이스를 굉장히 따르는 느낌이 없지않아 있었어요. 루프 속에서 에이스만이 가장 먼저 유우에게 말을 걸어 주었으니까요. 때문에 그림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상대였습니다. 그러나 루프가 끝났음을 인지한 후, 유우는 조금 더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평소 이야기를 나눠 보지 않은 친구 옆으로 자리를 옮겨 보기도 하고, 에이스가 추천해주지 않았던 새로운 메뉴에 도전해보기도 하며 조금씩 '유우' 만의 삶을 만들어 나갑니다. 그런데 에이스는 이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자신이 추천해 주지 않은 나폴리탄을 먹고 있는 유우에게, '그거 맛있나 봐?' 라고 톡 쏘아붙인 적이 있습니다. 유우는 순간 맛있다고 긍정했고, 에이스는 그대로 일어서서 식당을 나가버렸어요. (유우:아무고토모름) 에이스는 나중에 자신이 어린애 같았다는 걸 인정했지만, 이를 유우에게 사과하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마음이 시끄러운 모양이네요.

Q. 유우의 고백을 거절한 뒤의 둘의 모습은 어떨까요?
A. 고백을 거절한 후로부터 급격하게 저주가 시작되어서 바로 뒷작업을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자신이 왜 유우만을 바라보고 있는지, 유우에게 이유 모를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는 점을 서서히 잊습니다. 유우는 그런 에이스의 변화를 보며, 드디어 올 게 왔다고 생각하고요.
에이스는 달라진 유우를 보며 원래 애가 이렇게 활발했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직접적인 원인을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동시에 유우에게 살짝 찝찝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왜인지는 모르면서-괜히 유우에게 너스레를 떨며 좀 더 챙겨주려고 해요.
정작 이러고 나중에 후회함

신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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