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Rose
Prefect
ⓒ 자정님

  유우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전보다 가벼운 머리카락의 무게라던가, 귀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은 일상적인 아침을 어색하고 낯설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이곳에 온지 긴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고, 엄청난 변화를 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낯설고 어색한 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하던 유우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많은 루프를 겪으며 몸에, 마음에, 그리고 쌓여가는 시간 속에 어렴풋한 흔적으로만 자리 잡은 무의식은 그녀 스스로 변화를 달가워하지 못하게끔 속박하고 있었는데,

“좋은 아침.”

  복도에서 마주친 이, 에이스의 이야기가 그녀를 묶어둔 사슬을 끊어내 준 것이 이 변화의 계기였다. 그 이후로 유우는 에이스에게 호감을 쉬이도 내비칠 수밖에 없었고 고백과 거절을 한 번 주고받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에이스는 이 고백마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니, 문제는 아니었을까? 다른 이였다면 이 자체에 큰 상실감을 가 질 일이 맞았다. 그렇지만 유우는 아니었다. 상실, 슬픔, 이런 감정이 없다고는 할 수 없어도 그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 쌓여간 성숙도는 가장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모색하게끔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선택은 이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거절은 차치하고 앞으로의 희망도 없는 관계에 희망을 걸지 않는 것이었어서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올 긴 머리카락처럼 없었던 마음으로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좋은 아침~, 좀 피곤할지도.”

  유우의 생각이 어떻든, 에이스가 작게 입을 가리고 하품하며 평소처럼 인사를 받았다. 교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그는 요즈음 느껴지는 이질감에 고개를 기울였다. 분명 자신과 그녀의 거리는 이 정도가 적당했고, 좋은 친구 그 이상으로 넘어가 본 적이 없는데. 뭔가가 흐릿하게 잊힌 듯한 감각,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가 성가시게도 어떤 단어를 만들어 냈는지까지 닿지는 못했다.
  거슬리고, 기분이 유쾌하진 못했다. 유우에게 한 번 솔직하게 이야기 해볼까 싶다가도 그녀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자신을 대하는데 괜히 들쑤시는 것 같기도 하고. 뒷머리를 긁적이며 멀뚱히 복도에 서 있자, 먼저 안으로 들어갔던 유우가 문을 열고 에이스의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쳤다.

“왜 안 들어와?”

  생각을 반복하느라 자리에 서 있던 그에게 불쑥, 말을 걸어오는 탓에 에이스가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너무 가까운 거 아니야? 흑색의 눈동자가 선명하게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보며 에이스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눌러 내렸다. 앞에서 깜빡이는 동안 덮이는 색이 아쉽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각하며 에이스는 생각했다.
  자신의 마음이 피부에 새겨진 것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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