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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를 달리는 마차

돌쇠님 글 커미션


  후레한 차림의 마차에는 분명 어떠한 요정의 마법도 걸리지 않았겠지만, 한밤중 젖은 땅 위를 구르는데도 바퀴 소리는 마냥 시끄럽게 들리지를 못했다. 그건 아마도 얼굴을 숨기려 덮은 두꺼운 로브 탓도 아니고, 발자국을 지워줄 세찬 빗소리 탓도 아니고, 당장 눈앞에 마주 앉은 그가 이유일 것이다. 낡은 천 주머니에 반짝이는 것이라곤 모조리 휩쓸어 도망치는 모습이라니, 마치 좀도둑 같지는 않은가. 가득 들어차서 입으로는 길죽한 진주목걸이를 뱉어내는 보석 주머니를 바라보며, 유우는 이 상황이 참 동화 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이가 없다 못해, 출판사에서마저 환영받지 못할 진부한 동화책. 틀에 박힌 삶을 지겨워한 왕자님이 하녀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떠난다는 이야기. 지루하고 익숙한, 동화적인 이야기라고. 덜컹거리는 마차에 몸을 기대자 바퀴가 돌부리에 걸린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니, 이건 동화만도 못하지. 요정 대모님의 황금마차가 아니니까. ··· ···소설에서는 분명 로맨틱했었는데. 유우는 문득 저택 한켠 다시는 보지 못할, 제가 애정하던 소설 한권을 떠올렸다. 생각보다, 활자인쇄만큼 낭만적이지는 못하구나. 한참을 허름한 마차 안을 둘러보던 유우는, 제 맞은 편에 앉은 남자를 보자 괜히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그건 스무그루쯤은 되는 나무를 더 지나고 나서, 우려를 지우지 못한 목소리의 유우가 내뱉은 질문이었다. 그건 보석 주머니를 훔쳤다는 불안감도 아니고, 일터에서 도망쳤다는 죄책감도 아니었다.

  유우의 말에 에이스의 고개가 돌아갔다. 한참을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던 그의 얼굴에 문득 당혹감이 두껍게 발렸다.

  "도망가자며?"

  유우의 질문이 무색하게도 무식하리만치 단순한 대답이 돌아왔다.

  "··· ···그걸, 그렇게 단순히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긴 해?"

  "그 말은, 당장 네 눈앞에 나를 바보 취급 하는 거야?"

  익숙한듯 미간을 구기며 짜증 섞인 표정을 짓는 그에게는 티끌 같은 거짓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런 그를 보며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낌은 분명 유우의 착각이 아니었다. 세상에나, 이렇게나 멍청하다니 구혼을 보낸 소녀들이 불쌍할 지경이야! 미간 사이를 눌러 펴니 다시금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다가왔다. 갑자기 어디 아프기라도 해? 분명 걱정이 분명할 텐데도, 그 한마디가 왜 이리 답답하게만 들리는지. 유우는 다가오는 손길에는 선명한 다정함이 불구하고 신경질적으로 그의 손을 내치곤 소리쳤다.

  "지금 나랑 장난 하는 거야? 그렇게 바보 같은 이유로 도망을 치겠다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네가 그랬잖아, 너를 데리고 도망쳐줄 수 있는 사람이 좋다며. 그런데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해. 도대체 뭐가 그렇게 문제인 건데?"

  "··· ···허, 누가 보면 네가 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줄 알겠어. 정말 대단해."

  또 한번 단순하기만 한 대답에 유우의 얼굴에 근심이 드리웠다. 지독한 생각에 빠진 유우에게 당장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아아, 정말이지. 너는 도대체 언제까지 말장난을 하고 싶은 거야··· ···. 한껏 열을 받은 얼굴을 한 유우가 그의 뺨을 붙잡고는 외쳤다.

  "잘 들어, 에이스! 세상이 변해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어. 가령 너랑 나 같은 관계. ··· ···이런, 괜한 생각은 말아. 너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뻔히 알잖아. 법이니 뭐니를 떠들어도 까막눈인 사람들이 알 일이 있던가? 귀족이 없는 세상에도 나는 다른 아가씨들 같은 드레스를 입지 못해. 오색찬란한 샹들리에 아래서 무대를 즐길 줄도 몰라. 토끼굴 패인 나무 아래서 잠을 잘 줄밖에 모르겠지."

  말을 잇는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유우에게 뿌리를 내린 생각이었을게 분명했다. 그러나 생각뿐인 단어의 배열과 목소리를 낸 말은 확연한 차이가 있는 터라. 유우는 한마디, 한마디 제가 볼품없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꼴이, 참 우습구나 생각을 했다.

  "춤은 당연해, 사교계니 뭐니 하는 데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이며 말투는 꿈에도 모를 것들이야. 그런데도, 그런데도 정말··· ···."

  고작, 네 선택이 나라고. 두 뺨을 붙잡고 있던 손은 힘없이 떨어졌고, 자존심을 잃은 목소리는 어떠한 소리도 내지 못했다. 끝내 구겨진 얼굴을 한 유우를 바라보며, 에이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고작 그런걸 걱정한 거야?"

  "아니, 에이스. 너 도대체 방금까지 뭘 들은—"

  고개를 떨어트린 유우를 상대로, 이번에는 에이스의 손이 유우를 붙잡았다.

  "다들 너를 똑똑하다고 하더니, 순 거짓말인 게 분명해. 유우, 도대체 뭘 그렇게 걱정하는 건데? 왜, 무시무시한 마녀가 너를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 ···그런 게 아니잖아, 다 알면서 뻔히, 더는 나를 놀리려 들지 마!"

  "멍청한 게 어느 쪽인지 생각해 봐, 세상이 변해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잖아. ··· ···이른다면 사랑 같은 것들 말이야."

  멋쩍은듯 머리를 헤집는 그에 유우는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너··· ··· 너,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질문은 주인으로부터 어떠한 대답도 듣지 못한 채 흩어지고 말았다. 어색한 마부의 기침 소리를 빼고는, 한참을 침묵이 이어졌다. 소리가 다시 들린 것은, 줄지은 나무들 틈 사이로 바다가 비치기 시작했을 때였다.

  "··· ···무튼, 기왕이면 즐기는 게 좋을 거야. 이젠 돌아갈 수도 없으니까."

  창밖을 가리키는 에이스의 손 끝에는, 유우가 살아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길이 이어져 있었다. 유우는 그것에서 어떠한 해방감을 느꼈다.

  "마차는 타본 적 없지? ··· ···뭐, 나도 이만큼 나와본 적은 처음이지만."

  "··· ···."

  "기대 하는 게 좋을걸. 마차를 타면 세기를 건널 수 있거든. 몰랐지?"

  이상하게도, 한밤에 달을 등지고 웃음을 짓는 그에게서 유우는 작은 반짝임을 본 것만 같았다. 참 이상하게도, 거짓말인걸 아는데.

  "거짓말인 거, 나도 그 정도는 알아."

  더는 깊은 생각을 포기하며 유우는 창가 끝에 비스듬히 머리를 기대었다. 애써 날 선 말을 뱉어보는 유우의 눈동자에는 어딘지 모를 기대감이 서려 있다. 정말로 그의 말을 믿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저 창문 너머로 비치는 밤하늘을 보고 있으면, 꼭 그 말이 진짜일 것만 같아서··· ···. 괜한 기대라도 마음을 품고 싶었더라고.

  끝없이 길을 잃고 달리는 마차 바퀴를 바라보며, 유우는 짧은 꿈을 꾸었다. 새하얀 섬광이 일더니 마차에서 곧장 하이얀 날개가 돋아나는 것이 아닌가! 마차는 하늘로 날아올라서, 달을 넘고, 성을 건너, 한참을 내달려선, 마침내 작은 정원에 도착했다. 유우는 벌컥 문을 열고선 새빨간 장미가 만발한 꽃밭에 몸을 던졌다. 무척이나 기분 좋은 향이 나는구나··· ···. 천천히 눈을 뜨자, 익숙한 이의 품이 유우를 반겼다. 두 눈을 감은 채로 조용히 숨을 뱉는 채 잠든 그에게서, 유우는 어딘가 그리운 느낌을 받았다. 어느새 비가 걷힌 세상에는 지독한 공허만이 남아있었고, 유우는 그를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에이스, 나 꿈을 꾸었어. 정말로 세기를 달리는 마차가 바다를 가르고 달리는, 무척이나 동화 같은 꿈 말이야. ··· ···넌 정말로, 나를 꿈으로 데려다 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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