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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섬의 지대

춘자(@SWERVINSEA)님 글 커미션


목덜미를 할퀴는 머리카락의 선단과 검붉은 사랑의 형태로 꿰뚫린 귓볼. 굴곡진 눈매가 발음하던 순수하고도 앳된 친애. 그러나 우울을 닮은 검은 이면만큼은 알 수 없기에, 마치 트럼프의 미지未知를 닮은 이. 유우. 그는 에이스의 오랜 난제였다. 붉은 시선 위를 떠나지 않는 유구한 인영. 우정의 산물이라 명명할 수 없는 저열한 불만과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것만 같은 아찔한 감각. 아득한 수평 너머를 목도한 듯 이지러지는 뇌리에도, 심부에 상흔처럼 남은 불가해의 이질감. 두근, 두근, 두근……. 육신의 말단에서부터 타고 오르는 감각은 신열⾝熱과도 같았다. 유우를 응망하던 에이스의 모든 순간은 열섬의 지대였다. 책략과 계산으로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생경한 감정.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온종일 골몰할 수밖에 없는 것. 수많은 일상과 친애의 언어 속에 파묻혀 있던 와일드카드. 사랑. 미지와 신비를 장악하던 그가 정복할 수 없는 단 하나의 판. 비로소 동일한 선상에서 마주하는 두 사람은, 마침내 사랑과 망각이 팽배하는 무대의 막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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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lemon candy

몽치(@mongchi_cmcm)님 타로 커미션


첫 키스는 레몬 사탕 맛이 난다며, 정말로?

첫 키스를 하게 된 경위

단순히 ‘키스’를 ‘입과 입이 맞닿는 행위’라고 정의한다면, 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이전에 이미 입술을 맞댄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레몬맛의 상큼한 첫 키스라기보다는, 입안에 감도는 비릿한 피 맛과 눈앞에 별이 떠다니는 충돌 사고에 조금 더 가까웠어요. 이 충돌 사고를 결단코 첫 키스라고 기억하지 않겠다는 에이스의 집념이 있었기에, 에이스와 유우는 분위기 좋은 장미 정원에서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깃털을 삼킨 듯 간질간질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 조심스럽게 유우의 손을 잡습니다. 유우 또한 에이스와 같은 마음인지, 좀처럼 시선을 가만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을 굴려요. 그러다 결국 꼭 감아 버리는 것이, 이럴 때만큼은 영락없는 또래 여자아이 같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는 그렇게나 아득하게 어른스러워 보였는데 말이에요.

키스할 때의 상황

‘저번처럼 갑자기 부딪히면 안 돼. 그때 코피 나서 한동안 고생했단 말이야.’ ‘어,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거야.’ 그건 하루빨리 잊어 달라며 투덜대던 에이스가 조심스레 유우와의 거리를 좁혀, 입술을 머금은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응. 하고 유우가 가볍게 어깨를 움츠리면, 에이스는 장갑을 끼지 않은 손으로 유우의 손을 더욱 파고들어 손깍지를 껴요. 크기는 비슷 하다만 잦은 운동으로 굳은살이 단단히 박인 것이, 영락없는 남자아이의 손이라 유우는 한껏 얼굴에 열이 오릅니다. 달큰한 립밤의 향이 코를 간질이는 한편, 축축한 혀가 유우의 건조한 입술을 한 번 쓸고, 그대로 입술 사이의 틈을 파고듭니다. 유우로서는 처음이라고 할 수 없는 키스지만, 매번 에이스와 키스할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맙니다. 에이스가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고스란히 알 수 있기 때문이에요. 평소의 한없이 장난스러운 모습이 모두 거짓말 같이 느껴져요.

키스할 때, 에이스의 심정

버석한 유우의 입술을 한 차례 훑고, 더운 숨을 들이쉬며 고개를 가로 틀어 더욱 깊숙이 유우를 탐닉합니다. 유우가 눈을 꼭 감고 있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평소 유우의 성격을 생각해 본다면 뜨고 있는 것도 이상할 거예요. 유독 어른스럽고, 눈이라도 돌린다면 금세 어딘가로 떠나 버릴 것 같은 여자아이. 에이스는 그런 유우를 붙잡아 두고픈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유우를 붙잡기 위해 애써 노력하는 것은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니까. 그런 건 에이스의 능청스러운 성격과 맞지 않으니까…. 유우가 자신의 덫(Trap)에 걸려들어 주기를 바랍니다. 이 키스가 유우를 이끄는 미끼 중 하나가 되기를, 자신 또한 그럴 것이니 유우도 이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 주길 바라요.

키스할 때, 유우의 심정

에이스 키스 왜 이렇게 잘해?! 쿵쿵 울리는 심장과 함께 유우의 머릿속 에는 한 문장만이 가득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에이스와의 키스가 처음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매번 입을 맞출 때마다, 손을 맞잡고 그의 온기를 느낄 때마다 그 능숙함에 당황하고 맙니다. 이번에는 당황하지 말아야지, 너무 천덕꾸러기처럼 보이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해도 귓가에 속삭이는 에이스의 목소리 한 번이면 하. 하고 기가 찬 숨을 내뱉고 말아요. 혀가 질척이며 뒤섞이는 소리가 머릿속을 울립니다. 어느덧 가빠지는 호흡에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고, 옷 너머로 맞닿은 가슴이 빠르게 오르내려요. 혹시 에이스도 루프를 하는 것은 아닌지, 그게 아니면 이렇게 키스를 잘할 리가 없습니다. 여러모로 당황하는 기색이 짙어요.

키스하는 장면을 들켜버렸다! 누구에게?

그러던 중, 부스럭, 하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들립니다. 당황한 유우가 그대로 입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유우의 입 안에 있던 에이스의 혀가 그대로 씹히고 말았어요. 악 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둘은 트레이와 마주 합니다. 어쩐지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 유우와, 입을 부여잡은 채로 눈물 한 방울을 찔끔 흘리고 있는 에이스. 트레이는 그 둘을 빠르게 번갈아 보아요. 트레이가 상황을 파악하고, 안경을 바로 고쳐 씁니다. 설마하니 진귀한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네. 트레이의 진중한 목소리에, 에이스는 혀가 씹힌 아픔도 잊고 딸꾹. 하고 숨을 삼켜요.

키스 장면을 목격한 사람의 반응은?

트레이는 짓궂은 미소를 짓습니다. 그가 하츠라뷸에 재학하는 삼 년 동안, 기숙사에서 온갖 사건을 마주했으니까요. 리들 몰래 규칙을 어기는 것부터, 외부인을 기숙사로 몰래 들여 애정 행각을 하는 것도 빈번했습니다. 한창 혈기 왕성할 때의 남자 고등학생들은 가끔 상상 밖의 일을 저지르기도 했고, 트레이는 그럴 때마다 못 본 척 넘어가곤 했습니다. -물론, 리들에게 들키기 전에 ‘원만하게’ 해결했지만요.- 그러나 이번 경우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천방지축 에이스의 약점을 잡았다는 사실이, 트레이의 눈을 빛내기에 충분해요. 친근하게 미소 지으며 이 녀석들. 하고 꾸중하지만, 안경 너머의 눈은 장난스럽지 않습니다. 그걸 알기에 에이스는 시선을 피하기 급급한 거겠죠.

들켜버렸다! 에이스의 반응

여러모로 머릿속에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물론 트레이 클로버가 이걸 고대로 리들에게 일러바칠 위인은 아니지만, 트레이가 저렇게 히죽이며 웃을 때는 일이 편안하게 흘러간 적이 없으니까요. 아직도 얼얼한 혀를 몇 번 내두르고는, 최대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굴기 바쁩니다. 앞으로의 원만한 학교생활을 위해서는 최대한 트레이에게 책잡히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상책. 트레이가 무얼 하고 있었느냐는 질문에도 유우에게 장미 정원을 안내해 주고 있었다고 재주 좋게 둘러대요. 유우의 등을 쿡 찌르며 어서 자기 말에 동의하라고 하는 것은 덤입니다.

들켜버렸다! 유우의 반응

유우는 에이스의 반응에 오히려 더 놀랐어요. 참 나. 이럴 때 보면 영락 없는 어린애 같다니까. 에이스의 은밀한 -아무리 그래도 트레이에게는 모두 보일 텐데- 메시지를 수신하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전부입니다. 어쩜 저렇게 팬케이크 뒤집듯 분위기를 휙휙 바꿀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면이 앞면인지 좀처럼 판가름하기 어렵습니다. 잘못 뒤집었다가는 조커를 뽑아 버릴 것 같은 얕은 긴장감을, 유우는 에이스를 대할 때마다 늘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장난스러운 미소에 번번이 넘어가 주는 자신을 보면, 아직 에이스를 좋아하고 있고, 이번에도 새롭게 에이스를 좋아하겠구나. 하고 깨닫고야 마는 것입니다. 키스 장면을 트레이에게 들키는 것은 유우에게 걱정거리도 아닙니다. 유우는 하츠라뷸의 기숙사생도 아니고, 트레이가 이 일로 자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해 올 위인이 아님을 잘 알고 있거든요. 에이스보다는 당당하게 트레이를 마주하네요.

그 이후, 첫 키스의 후기

트레이는 그런 둘을 번갈아 보더니, 너털웃음을 짓습니다. 애정 행각은 좋지만, 이렇게 들키기 쉬운 곳에서 하면 손해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해 주어요. 떠나가는 트레이의 뒷모습을 보며, 유우는 에이스의 발을 쿡 밟습니다. 남자애가 쫄기는. 분위기를 잡겠다며 자신을 장미 정원 깊숙한 곳으로 데려온 건 에이스면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니 맥이 탁 풀리는 거 있죠. 하여간 암만 어른스러운 척해도 어린애라니까. 유우는 입 안에 은은하게 느껴지는 체리 맛을 곱씹으며 먼저 장미 정원을 벗어나요. 에이스는 그런 유우를 허둥지둥 쫓아오느라 바쁩니다. 에이스는 이 열기와 장미 향 가득한 순간 또한 잊고 말 것입니다. 기억하는 것은 유우만의 몫입니다. 오직 유우만이 이 순간에 여전히 붙잡혀(Trap)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둘은 언젠가 다 시 장미 피는 오월에 누구보다도 달콤한 첫 키스를 나눌 거예요.

추가질문

Q. 이후 이 사건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A. 트레이의 입단속으로 다행히 둘의 첫키스가 외부에 퍼지는 일은 없었어요! 한동안 에이스가 트레이의 눈치를 살펴야 했지만…. 그건 유우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먼저 유우를 장미 정원으로 데려간 건 에이스니까요. 유우는 장미 정원에 간다면 다른 학생들에게 들킬 것이라고 미리 조언까지 했구요. 애인 말 안 듣더니 쌤통이다라며 괜히 혀를 삐죽 내밀며 약올리기도 했다네요.

Q. 이후에 리벤지를 하나요?
A. 리벤지라고 해야 할까요…. 트레이에게 걸릴 뻔한 것이 워낙 에이스에게 있어서 트라우마였는지, 다음부턴 키스를 길게 하지 않아요. 가벼운 버드 키스를 하던가, 입을 제대로 맞추더라도 그 시간이 확연히 짧습니다.
서로의 숨을 공유하고, 손을 얽어쥐며 입안을 탐할 정도의 짙은 키스는 낡은 기숙사라던가 아예 인적이 드문 곳에서 하기로 암묵적인 룰이 생겼네요.
에이스가 이렇게 남의 시선을 신경 쓰던 애였나…. 유우는 잠깐 생각에 빠지다가도 에이스의 체리빛 눈 안에서 소유욕이 일렁이는 걸 보곤 잠자코 눈을 감습니다. 그래, 이런 점이…. 눈 깜빡할 사이에 빌런이 되는 면모를 유우는 사랑스럽다고 생각해버린거에요.
 
Q. 이 세계관에선 둘이 연인이 돼버렸는데(…) 고백은 누가 하게 된 걸까요?
A. 고백한 건 에이스에요! 아무래도 유우는 매번 수락하는 입장이 될 수밖에 없네요…. 노을이 유독 붉던 날, 낡은 기숙사로 유우를 데려다주던 에이스가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져보았다고 해요.
에이스에게 필사적인 고백이라던가 하는 건 어울리지 않으니, 그 나름의 노력이었을 겁니다. 그런 여유만만한 태도를 유지하려하는 게 괘씸하기도 하지만…. 그 때 에이스의 귀가 잔뜩 붉어진 걸 발견해버렸으므로, 유우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에이스는 100%, 유우같이 어른스러운 애라면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넘겨버릴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유우가 수락해줘서 되레 자신이 깜짝 놀랐다네요.

냐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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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에 갈까요?


두 사람은 겨울 여행지에서 마주칩니다. 우연적인 만남을 뜻하는 카드가 나온 걸 보니, 에이스와 유우 모두 여행지에서 그리운 얼굴을 마주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에이스는 친구의 아르바이트를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삼 일간 직원용 산장에서 머무르며, 고객들의 불편을 살피고 산장을 정비하는 아르바이트예요. 에이스는 산장으로 겨울 여행을 온 다정한 커플들을 보면서, 원인 모를 질투심과 착잡함에 하루하루 투덜대고 있었습니다. 카드를 보아하니, 에이스는 뒤늦은 자각 이후 유우에게 자신의 마음을 허락받지 못 한 모양입니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후회스러우며, 솔직하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을 꼴사납다고 여기고 있네요.

그런 에이스에게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려는 듯, 어느 날 유우가 겨울 산장에 방문합니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가, 머물 곳을 마땅하게 찾지 못 해 급히 이틀간 묵게 된 모양입니다. 이렇게 된 김에, 겨울철 사우나도 즐기며 산장 여행을 제대로 즐길 계획이었어요. 그러나 유우는 털모자를 눌러 쓴 채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에이스를 발견하고 눈을 질끈 감습니다. 아무래도 마음 편한 여행은 물 건너간 것 같아요. 유우는 이 때도 에이스에 대한 마음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미약하지만 아직 남은 짝사랑의 잔재를, 유우는 어떻게든 치우려고 애쓰고 있네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우가 머물던 산장의 보일러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유우는 냉기에 밤잠을 설쳐야 했어요. 이놈의 산장은 절대 다시 오지 않겠다고 이를 부득부득 갈 때쯤, 에이스가 공구 상자를 들고 유우의 숙소에 방문합니다. 에이스는 유우를 본체만체하며 유우가 불평했던 보일러를 뚝딱 고치기 시작해요. 어색한 침묵 속, 가끔 서로 부딪히는 공구 소리만이 들려 옵니다. 생각해 보면 고백 한 번 거절당했다고 이렇게 나빠질 사이가 아니었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유우도, 에이스도 짐작 가지 않습니다. 둘은 정말 친한 친구였고, 앞으로도 그럴 줄 알았어요.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되지 않아도, 지금까지 함께 해 온 시간이 있으니 충분히 금 간 마음을 메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고, 결국 에이스와 유우는 졸업 이후 몇 년간 소식도 모르고 살다가 다시 서로를 마주 하게 된 거예요. 여러모로 운명의 장난이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형식적인 안부 인사. 그저 직원과 손님이라는 관계성에 어울리는 문답. 그렇게 긴장감이 유우의 목을 졸라 올 때쯤 보일러의 수리가 끝났고, 에이스는 유우에게 남은 시간 편안히 머물다 가라는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한 채로 거실을 가로지릅니다. 이대로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그렇게 생각했으나…. 에이스를 마주한 것은, 열리지 않는 현관문과 헛돌아 가는 손잡이뿐이었습니다. 에이스는 그 순간. 먼 옛날 유우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하아? 하고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어요.

원인은 간밤에 온 함박눈입니다. 지붕에 쌓여 있던 눈이 한 번에 떨어지며, 현관문 앞을 가로막은 거예요. 에이스가 급하게 무전을 쳐 보지만, 눈을 전부 치우려면 반나절이나 걸린다는 답변만이 돌아옵니다. 에이스는 눈을 질끈 감습니다. 다시 눈을 뜨면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다시 눈을 뜬 에이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얼굴이 벌게진 유우였어요. 눈에는 눈물이 그렁한 채로, 에이스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당황한 에이스가 유우를 부르기도 전에, 유우는 그대로 방에 들어가 문을 세차게 닫아버렸 어요.

사실, 유우는 에이스를 만나 조금 안도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살가웠던 옛날처럼 둘의 관계를 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유우는 학창 시절 내내 에이스에게 의지했었고, 그것은 학교를 졸업했다고 해도 쉽사리 잊을 수 없는 감각이었어요. 에이스는 늘 귀찮다고 투덜대면서도 유우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고, 유우의 칭찬을 듣고 싶어 매번 유우의 곁을 맴돌며 그의 공적을 자랑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자신의 시선조차 싫다는 듯 고개 를 숙이고, 장난 따위 하나 걸지 않는 모습이라니…. 유우가 알던 에이스의 모습은 한 톨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만큼 자신이 에이스에게 잘못한 것이 있는 지 묻고 싶어요.

그렇게 몇십 분이나 지났을까. 에이스는 조심스레 유우의 방문을 두드립니다. 에이스가 기억하는 유우라면, 지금 즈음 혼자서 온갖 안 좋은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까요. 예전부터 그랬어요. 가끔 자신보다 한참 어른스러운 유우를 바라보고 있자면, 에이스는 유우가 정말 자신과 동갑내기인 아이가 맞는지 궁금해지곤 했습니다. 어울려 놀다가도 때때로 혼자 다른 세상을 사는 것처럼 외로워하던 유우의 모습을, 에이스는 어른이 된 지금도 기억해요. 학교를 졸업하고, 원더랜드에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자리 잡은 지금은 그 때와 많이 달라졌으리라 생각했는데, 방 안에 콕 틀어박힌 채 나오지 않 는 모습을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모양입니다.

굳게 닫힌 유우의 방문을 열어젖히는 것, 학창 시절에는 차마 할 수 없었던 행동을 에이스는 이제 실행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유우가 자신에게 다가오기만을 기다릴 순 없어요. 지금의 행동이 유우와의 영원한 결별을 불러 일으킨다고 해도, 에이스는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유우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에이스는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고는, 유우의 물기 어린 눈을 응시합니다.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유우의 모습은 에이스가 이제껏 보지 못 한 모습입니다. 그 풍경에 에이스는 심장 한구석이 서늘해지면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유우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기뻐져요. 에이스는 유우의 손을 잡고 유우를 달랩니다. 그렇게 울면 내일 완전 붕어가 되어 버릴 것이라는 둥, 자신은 유우를 만나 기뻤다는 둥…. 약간의 장난과 진심을 섞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유우 또한 에이스의 손을 힘주어 잡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그것을 인지한 순간, 에이스는 가슴께에서 열이 확 올라오는 것이 느껴집니 다. 한창 짝사랑을 하던 남자 고등학생처럼요. 답지않게 몇 번 말을 흐리던 에이스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유우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일종의 고해성사처럼도 느껴지는 실토. 그간 유우를 좋아했었고, 따라서 오늘 만나 기쁘다는 그 한마디. 유우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자, 에이스가 지난 몇 년간 가슴 속에 묻어 두고 있었던 고백입니다.

그 한마디가 뭐가 그렇게 어려웠을까요. 한바탕 이야기를 마친 두 사람은 부엌에서 함께 차우더를 만들며 관계를 회복합니다. 정말 옛날로 돌아간 것 처럼 서로에게 장난도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요. 에이스가 보일러를 고쳐 준 덕에, 유우는 어제와 달리 훈훈한 저녁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현관문은 굳게 닫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처지이지만, 유우는 감히 그 이상의 사건을 바라보아요. 이 순간에 머무르고 싶습니다. 에이스의 손을 잡고 있는 이 순간에도 불안하기 그지없어요. 함박눈이 그치면 한겨울의 마법이 풀릴까 봐, 또 내일 아침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에이스가 자신을 떠나버릴까 봐. 그런 유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에이스는 밤새 유우의 곁에 머물러 주었습니다. 각방을 쓸 수 있었는데도, 침대가 아직 데워지지 않았다며 유우의 곁으로 이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게 아니겠어요. 괜히 덥다며 투덜대면서도, 유우는 에이스로부터 신뢰와 안정을 느낍니다. 치기 어렸던 시절 느꼈던 단순한 호감과는 또 다른 감정이에요. 유우는 에이스의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이곳이 낡은 기숙사가 아닌, 산장인 것도 잊을 만큼 단잠에 빠져듭니다.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은 해가 중천이 되어서야 일어났어요. 어제 새벽까지 못다한 이야기를 나눈 탓입니다. 그것도 눈을 다 치운 직원이 산장의 문을 열어 둘을 깨운 덕이었지만요. 직원은 에이스를 보자마자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갇혔다지만 손님방에서 팔자 좋게 자고 있으면 어 쩌냐는 이야기부터, 무사하다는 문자 한 통은 보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걱정까지…. 에이스는 그 모든 잔소리를 적당히 웃어넘기면서, 유우에게 살짝 윙크합니다. 그제야 유우는 눈앞의 에이스가 자신이 알던 장난꾸러기와 동일 인물이며, 해가 뜨고 낮이 찾아왔음에도 이전처럼 자신을 떠나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어요. 비록 여의찮게 찾아온 산장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배시시 미소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에이스와 유우는 새롭게 겨울 여행을 계획해요. 이번에는 정말 두 사람이 함께하는 겨울 여행입니다. 에이스가 일하던 곳도 좋고, 전혀 다른 곳도 좋고…. 둘이 함께라면 어디든 좋아요. 여행에서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전혀 달라 계획을 짜는 내내 도통 조용할 날이 없지마는 유우와 에이스는 마냥 즐겁습니다. 이제는 서로에게 솔직해지기로 약속한 만큼 부딪힐 일이 더 많겠지만, 이 또한 에이스의 마법과 유우의 마술로 어떻게든 해결될 거예요. 유우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다짐합니다.


그날 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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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우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전보다 가벼운 머리카락의 무게라던가, 귀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은 일상적인 아침을 어색하고 낯설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이곳에 온지 긴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고, 엄청난 변화를 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낯설고 어색한 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하던 유우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많은 루프를 겪으며 몸에, 마음에, 그리고 쌓여가는 시간 속에 어렴풋한 흔적으로만 자리 잡은 무의식은 그녀 스스로 변화를 달가워하지 못하게끔 속박하고 있었는데,

“좋은 아침.”

  복도에서 마주친 이, 에이스의 이야기가 그녀를 묶어둔 사슬을 끊어내 준 것이 이 변화의 계기였다. 그 이후로 유우는 에이스에게 호감을 쉬이도 내비칠 수밖에 없었고 고백과 거절을 한 번 주고받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에이스는 이 고백마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니, 문제는 아니었을까? 다른 이였다면 이 자체에 큰 상실감을 가 질 일이 맞았다. 그렇지만 유우는 아니었다. 상실, 슬픔, 이런 감정이 없다고는 할 수 없어도 그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 쌓여간 성숙도는 가장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모색하게끔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선택은 이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거절은 차치하고 앞으로의 희망도 없는 관계에 희망을 걸지 않는 것이었어서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올 긴 머리카락처럼 없었던 마음으로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좋은 아침~, 좀 피곤할지도.”

  유우의 생각이 어떻든, 에이스가 작게 입을 가리고 하품하며 평소처럼 인사를 받았다. 교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그는 요즈음 느껴지는 이질감에 고개를 기울였다. 분명 자신과 그녀의 거리는 이 정도가 적당했고, 좋은 친구 그 이상으로 넘어가 본 적이 없는데. 뭔가가 흐릿하게 잊힌 듯한 감각,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가 성가시게도 어떤 단어를 만들어 냈는지까지 닿지는 못했다.
  거슬리고, 기분이 유쾌하진 못했다. 유우에게 한 번 솔직하게 이야기 해볼까 싶다가도 그녀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자신을 대하는데 괜히 들쑤시는 것 같기도 하고. 뒷머리를 긁적이며 멀뚱히 복도에 서 있자, 먼저 안으로 들어갔던 유우가 문을 열고 에이스의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쳤다.

“왜 안 들어와?”

  생각을 반복하느라 자리에 서 있던 그에게 불쑥, 말을 걸어오는 탓에 에이스가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너무 가까운 거 아니야? 흑색의 눈동자가 선명하게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보며 에이스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눌러 내렸다. 앞에서 깜빡이는 동안 덮이는 색이 아쉽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각하며 에이스는 생각했다.
  자신의 마음이 피부에 새겨진 것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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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횡단

춘자(@SWERVINSEA)님 글 커미션


무궁하게 반복되는 생에서 살을 꿰뚫는 치장은 무용하다. 억겁의 회귀를 홀로 감내하며, 뇌리를 으그러뜨리는 권태와 훼손된 살점은 비례적으로 차오르기에. 청산할 수 없는 저주는 유우의 삶을 가장자리에서부터 침범하고, 무수한 선택을 차근히 내버리도록 종용한다. 그렇기에 희망의 동의어를 발음하던 그에게 바친 애정 역시 체념의 형태로 굳어진다. 그러나 망각이 육신의 상흔마저 도려낼 수는 없으니, 기억의 잔재는 그에게 명백한 영향을 미친다. 유구한 체온의 부재는 근간조차 불분명한 불만을 낳고, 익숙한 친애 사이 간과하던 감정을 목도케 한다. 시선의 귀결이 늘 너에게로 맺어지던 이유. 도려낼 수 없는 일상의 형태가 되어, 존재의 자취를 되짚게 되던 이유. 친우親友라는 정의로는 결코 해명할 수 없는 갈증. 붉은 트럼프의 주인은 마침내 오랜 추종의 본질을 깨닫는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널 찾아왔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망설임의 불식과 경계의 횡단을 고대하는 것. 그것이 에이스가 선언하는 사랑이다.
그러니 유우, 너는 내게 한 걸음만 다가오면 돼.

구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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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너와 함께

 

설서화님(@seohwa) 글 커미션


“…그러니까 이렇게 돌려보면, 스페이드 6! 하핫, 굉장하지?”
“우오옷, 이 몸의 카드를 맞췄다구!”
 
 언제나와 같은 오후의 티타임, 조금 많이 우려졌나 싶을 정도의 얼 그레이와 함께 있노라면 이게 몇 번째의 티타임인지 잊을 정도였다. 소녀, 유우에게는 특히나 몇 번째의 찻잔을 기울인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동급생이자 늘 같이 다니는 콤비 중 하나인 에이스 트라폴라가 의기양양하게 카드를 들고 온 것을 빼면.
 궁금하다고 했었지? 테이블에 앉아있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에이스가 말했다. 자신이 쓰는 카드를 집에서 보내주었다고 하며 꺼내든 카드는 끄트머리가 조금씩 닳아있어 에이스가 얼마나 많이 사용했는지 가늠이 될 정도였다. 익숙하게 카드를 섞고 바닥에 펼치는 에이스는 한 명씩(그리고 한 마리) 지목해 카드 마술을 보여주었다. 검푸른 머리의 친구나 작은 마수의 감탄소리에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진 소년이 몸을 돌려 유우를 바라보았다.
 
“자, 이젠 유우 차례. 한 장 골라봐!”
“음… 이 카드로 할까?”
 
 유우는 자신의 앞에 펼쳐진 카드를 가볍게 훑다가 한장을 빼놓고 에이스를 바라봤다. 유우, 너 혼자 보면 되거든? 보고 다시 뒤집어놔. 유우는 카드를 뒤집었다. 혹시라도 에이스가 볼세라 손으로 가리며 펼쳐본 카드 하트의 에이스. 눈앞에 있는 소년과 같은 카드였다. 뭐가 나왔어? 옆에 있던 친구들이 목을 빼고 유우가 든 카드를 훔쳐보았다.
 
“응. 확인했어.”
“좋아. 그럼 다시 뒤집고, 이번엔 네가 직접 섞어봐.”
 
 에이스의 말을 따라 유우는 천천히 카드를 섞었다. 에이스처럼 빠르고 능숙하게 셔플을 할 줄 몰라 조심스럽게 카드를 그러모아 섞어나갔다. 손 끝에 닿는 카드의 모서리들이 무뎠다. 한참 카드를 섞는데 열중한 유우를 바라보던 에이스가 유우의 손을 잡았다. 지금 손 아래에 있는 카드. 뭐일 것 같아? 설마. 에이스의 말에 유우는 맨 위 카드를 올려보았다.
 
“하트의 에이스네. 맞췄지?”
 
 우와! 또 맞췄다구! 놀라서 큰 소리를 내는 듀스와 그림 사이에서 유우 또한 감탄의 탄성을 내뱉었다. 보란 듯이 웃는 에이스와 하트 에이스 카드를 번갈아보던 유우의 눈이 빛났다. 에이스의 카드 마술은 이전의 회귀에서도 몇 번을 봐온 것이지만, 언제 보아도 탄성을 만들어냈다.
 
“대단해 에이스! 어떻게 이렇게 맞춘거야?”
“요령만 알면 쉬워. 물론! 나니까 이렇게 한 번에 할 수 있는 거지. 그래도 간단한 마술은 금방 할 수 있을걸?”
 
 한번 해볼래? 에이스의 제안에 유우는 카드 끝을 톡, 톡 건드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어려운 제안도 아니고, 모처럼이니 카드마술 정도를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보였다.


“이렇게 하면…”
 
아. 또 아니네.
 유우는 몇 번째 카드마술을 연습해보았지만, 에이스가 알려준 카드 뽑기 마술은 시도하는 족족 실패하곤 했다. 머릿속에 트릭의 흐름은 완전히 있었지만 카드를 만져본 경험이 적은 것이 문제가 되는 것 같았다. 원하는 카드를 떠올리며 카드를 뒤집어보아도 눈앞에 펼쳐진 카드는 전부 생각과는 다른 카드만 놓여있었으니.
 여러 번 루프를 반복한 유우는 뭐든 빨랐다. 소녀의 습득력 자체가 좋은 탓도 있었지만, 연차로 따지면 벌써 몇 년째. 유우는 많은 것을 반복 학습한 끝에 이미 많은 것이 익숙해져있었다. 이제는 몇 번의 시도만으로 못하는 것이 거의 없던 유우였다. 하지만 조금의 변덕으로 시작된 마술 하나가 자신을 이렇게 애먹이게 할 줄은 몰랐는지 유우는 카드마술 앞에서 약해졌다.
 계속된 마술의 실패는 어쩐지 루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과도 같아 보였다. 일상 속에서 모든 것이 쉬울 수 있지만, 궁극적인 답을 얻어낼 수 없다. 유우는 루프 속에 갇힌 기분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몇 번의 카드를 뒤집어도 원하는 카드 하나가 나오지 못해 다시금 카드를 섞는 것처럼….
 
“뭐야 유우, 그만하게?”
 
 눈에 띄게 침울해진 유우를 본 에이스는 카드를 섞지 않고 정리하는 유우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닌데? 적어도 에이스가 보는 자신의 친구는 이런 사소한 실패로 금방 무너질 사람이 아니었다. 드문 반응을 보이는 유우를 향해 에이스는 되려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가벼운 목소리로 다시 말을 걸었다.
 
“왜 벌써 그만두려고 그래? 유우답지 않게. 간단한 거라니까?”
“나는.”
“응?”
“나는 너와 달라 에이스. 이런 카드마술 하나도 쉽게 해낼 수도 없단 말이야.”
 
 아, 저도 모르게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에이스에게 날카로운 말을 뱉어냈다.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이에게 이런 감정의 배출은 무의미하고, 유우 자신의 기분만 더 마이너스로 만드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순간적인 반응은 멈출 수 없었다. 유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당황한 기색이 되어 에이스의 얼굴을 보았으나, 에이스는 유우의 말에 무언가 고민이 생긴 듯, 눈을 꾹 감은 채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나 싶어 유우가 에이스를 바라본 몇 초, 에이스가 입을 뗐다.
 
“음…”
“저, 에이스 내가 말이 조금 심ㅎ…”
“아~! 정말이지! 유우!”
“심ㅎ…으,응?”
“나라고 뭐 처음부터 잘 한건 아니었으니까? 고작 몇 번 안된 걸로 바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나도 똑같이 그랬다고! 물론 이 몸은 센스가 좋아 금방 해낸 편이지만 말이지?
…그리고 내가 근성론 같은 말을 꺼내는건 영 아니지만 말이야, 고작 이런걸로 포기하지 말고 계속 하면 너도 금방 해낼 수 있겠지! 네 말대로 ‘이런 카드마술 하나’잖아!”
 
 짜증을 내는 듯한 목소리로 에이스가 말을 쏟아내었다. 목소리의 높이가 있을 뿐이지, 그 안에 담긴 말은 상냥한 말에 능숙하지 못한 소년 나름의 위로가 담겨있었다. 큰 꾸밈 없이 단순하고 서투른 위로는 오히려 스트레이트로 감정을 전달하는데 효과가 있었다. 에이스의 위로를 듣고 침울한 마음이 조금 가셨는지-아니면 큰 소리에 조금 놀랐던 건지-어느새 둥근 눈에는 우울이 가신 채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포기하지 않으면, 정말로 할 수 있을까?”
 
 카드 마술도. 루프와 망각도. 뒷 말은 입 밖으로 꺼낼 순 없었지만 유우는 확신을 받고 싶었다. 정말로 노력만으로. 포기하지 않는 것 만으로 할 수 있는걸까?
 
“아마도, …아니! 물론 할 수 있지!”
 
한 치 틀림없는 목소리가 소녀에게 들려왔다.
 
“그러니까 집어넣은 카드 다시 꺼내고, 한 번만 더 해봐. 이번에는 될 수도 있잖아?”
“알았어 에이스. 마지막으로 해 볼테니까.”
 
 소년과 소녀 사이의 테이블에 다시 카드가 놓였다. 이번에는 할 수 있을까? 작은 의문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고, 소녀는 카드를 떠올렸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열쇠가 되어줄 조커. 오직 조커 카드 하나만을 떠올리며 카드 셔플을 시작했다.
 이내 유우는 펼쳐진 카드의 한 가운데를 골라 뒤집어보았다. 에이스는 굳이 카드를 보지 않았다. 다만 유우의 표정에 맞춰 씨익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조커가 나왔어!”
“거 봐 유우!”
“네 말대로 다시 해보니까, 그러니까 정말로 해냈어!”
“그래. 너도 할 수 있다니까 그러네!”
“…응! 포기하지 않길 잘한 것 같아!”


 이파리 끄트머리마다 이슬이 맺혀있는 아침, 에이스와 듀스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책상에 턱을 괸 채 유우와 그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림을 데리고 먼저 교실에 들어와있을 유우였을텐데. 그 녀석, 늦잠이라도 잤나? 유우가 너냐?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투닥대던 두 사람은 문소리가 나는 곳을 보더니 일제히 소란을 멈추었다.
 
“그렇게 이상해?”
 
 그림과 함께 나타난 유우는 어제와는 달랐다. 길게 늘어트린 흑발은 온데간데 없고, 어깨가 전부 드러날 길이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타나선 태연히 웃어보였다. 어깨를 전부 덮었던 머리카락 하나가 짧아졌을 뿐인데, 제 나이에 맞는 소녀의 모습이 강조된 유우의 헤어 어레인지는 두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기 충분했다.
 
“부하가 아침부터 거울 앞에 있더니 갑자기 머리를 싹둑 잘라버렸다구!”
 
같이 온 그림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는지 호들갑을 떨며 아침 식사부터 비장해보였다느니, 씻는 시간이 좀 더 오래걸렸다느니. 아침의 상황을 조잘거렸지만 갑작스러운 시각적 변화에 놀란 하츠라뷸의 두 사람은 그림의 말에 반응해줄 수 없었다. 시도가 잘못된걸까? 아무런 소리가 없어 살짝 걱정이 되는지 유우가 머쓱하게 머리 끝을 만지작거렸다.
 
“괜찮아 보여, 에이스?”
“…어, 으응. 짧은 것도 좋네.”
“그럼 말이야.”
 
 에이스의 대답에 유우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지난번에 말했던 잘 어울릴 것 같다던 귀걸이. 아직도 팔고 있을까? 유우의 질문에 에이스가 슬쩍 웃었다. 같은 장소에 있지만 자신들을 바라보던 소녀가, 이제야 무언가를 함께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 소년은 소녀의 변화를 전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게 뭐 어때서! 일단 같이 해보면 되는 거니까.
 
“오늘 학교 끝나고 보러 가보자 유우!”
“그래, 같이 가보자!”
 
 소녀가 소년을 따라 웃었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미소짓는 아침이었다.

어떡하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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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바람, 그리고 너

몽치(@mongchi_cmcm)님 타로 커미션


매미가 울었다. 여름이었다ー

 
에이스는 이번 여름 방학을 그닥 기대하고 있지 않아요. 집으로 돌아가면 또 형에게 시달려야 할 거라느니, 동생의 삶은 고달프다느니 하며 투덜댑니다. 물론 진심은 하나도 담겨 있지 않지만요. 에이스에게 있어서 여름 방학은 유우와 만날 수 없는 기간이에요. 동시에 유우가 어딘가로 사라져버리지 않을 까 걱정해야 하는 기간입니다. 에이스는 아직도 어느 날 유우가 보낸 문자를 기억하고 있어요. 스카라비아 기숙사에 갇혔다는 문자는 제대로 끝맺음도 못한 채로 에이스에게 당도했고, 에이스는 그 길로 즉시 저금통을 털어 학교까지 달려왔습니다. 그 이후로 여름만 되면 유우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지 않을 까, 뜨거운 햇살에 그대로 녹아버리진 않을까 하는 얕은 걱정이 감돌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유독 여름 방학을 싫어하는 눈치네요.

여름 방학이 기대되지 않는 건 유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몇 번째 겪는 여름 방학인지, 어느 순간부터 유우는 셈을 포기했어요. 이번 여름 방학에도 할 일이 많습니다. 낡은 기숙사 청소에, 크로울리에게서 받은 잡무에... 이번 여름 방학에도 홀로 낡은 기숙사에서 보내야 할 겁니다. 모두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학교가 텅 비는 기간, 유우는 그 시간이 지겹도록 싫었어요. 이 세상에서 자신이 혼자라는 느낌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그런 유우와 함께해주는 그림이 있어 다행이지, 그림마저 없었다면 유우는 정말 미쳐 버렸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이번 방학도 잘 견디고 견뎌서, 친구들이 학교로 돌아오는 순간을 기쁘게 맞이할 것입니다.

그렇게 별 기대 없이 시작된 여름방학이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유우에게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바로 에이스가 낡은 기숙사에 놀러 온 거예요. 가족끼리 현자의 섬에 바캉스를 왔는데, 마침 유우의 생각이 나서 들렀다나요. 에이스는 부모님 허락도 받고 왔으니, 오늘 하루는 낡은 기숙사에서 자고 가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갑작스런 방문, 갑작스런 제안. 루프의 안정성을 중시하던 이전의 유우였다면 가장 기피하고 싶었던 상황이겠지만 어쩐지 이번엔 그렇게 싫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누군가 찾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에이스가 어떻게 알고 온 것인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마음을 읽는 마법이라도 익힌 걸까요. 유우는 기쁘게 에이스의 방문을 맞이해요.

왜 하필 바캉스를 학교가 있는 곳으로 오냐며 투덜대는 에이스와, 새삼스럽게 자신과 그림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집을 채우자 들뜬 유우입니다. 두 사람은 함께 쿠키를 먹고, 영화를 보고,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요. 에이스는 이번에 중학교 친구들과 만났는데, 그 곳에서 자기한테 고백했던 여자애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유우에게 꺼냅니다. 유우는 그런 이야기들이 마치 자신과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아서, 드라마를 보듯 빠져들었어요. 매일이 다른 생활, 루프하지 않는 삶, 언젠가는 유우에게도 찾아오겠거니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유우의 반응을 떠 보려고 한 건데, 생각보다 유우가 덤덤하게 나와서 괜히 말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마 에이스 머릿속은 엄~~청 복잡할 거예요. 유우는 진짜 자신을 편한 친구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유우의 앞에서 너무 어린애처럼 군 건 아닌지 여러모로 곤란해 보입니다. 유우는 다양한 경험을 한 에이스가 부러워서 정말 아침드라마 보듯 이야기를 들어 준 것 뿐인데도요. )  

에이스는 유우에게 있어서, '매일이 다른, 루프하지 않는 삶'의 체험판을 보여주는 사람이에요. 에이스와 있으면 매일이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요. 때문에 유우는 에이스에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낡은 기숙사를 찾아와 주어 고마워하고 있어요. 이를 에이스에게 말했다가는, 역시 이 오빠가 최고라느니 어쩌느니 하며 콧대가 높아질 게 분명해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해가 지자, 영화를 한 편 틀어 놓습니다. 에이스는 이번에 새로 개봉한 영화라며, 유우와 보려고 이제껏 안 보았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밝은 음악으로 시작하는 코미디 로맨스 영화. 어쩌면 뻔한 내용에 뻔한 결말일 수 있는 한 시간 삼십 분짜리 영상물, 그러나 유우에게 있어서 이 영화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유우는 그간 수 번의 여름 방학을 반복했지만, 지금까지 여름 방학 중에 영화가 개봉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거든요. 어쩌면 다음부터는 같은 여름 방학을 반복하지 않아도 될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루프를 벗어난 것일지도 몰라요. 어쩌면 유우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영화는 흘러갔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유우의 손을 에이스가 꼬옥 잡아 주었습니다.

에이스는 순간 놀랐어요. 유우가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복잡한 표정을 하곤, 화면 너머를 바라보는 것 같았거든요. 유우는 가끔씩 이렇게 에이스의 곁을 떠나곤 했습니다. 그리곤 에이스가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으면, 살짝 웃곤, 아무것도 아니라고 화제를 바꾸곤 했어요. 에이스는 유우의 이런 점이 싫었습니다. 기껏해야 동갑내기처럼 보이면서 혼자 어른스러운 척 하는 이레귤러. 분명 함께 있는데도 함께 있지 않은 것 같은 이 순간이 너무 싫어서 에이스는 자꾸만 유우를 현실로, 에이스의 곁으로 끌고 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요. 유우가 이대로 자신이 모르는 세계로 떠날까 두려워 끊임없이 유우를 부르고, 유우에게 어울릴 옷을 추천해 자신의 기억과 흔적을 남기려 들어요. 멋모르는 유우는 에이스의 흔적을 고스란히 받아 줍니다.

결국 유우는 영화의 내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 했어요. 그렇게 에이스가 잘 방을 안내해 주고, 에이스가 언젠가 생일 선물이라고 주었던 피어싱을 빼고, 에이스가 추천해 주었던 클렌징 폼으로 세수를 하고 침대에 눕습니다. 그리곤 생각해요. 유우는 에이스의 손을 잡음으로써 길고 길었던 토끼굴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 1%도 되지 않는 확률이었지만, 0%는 아니었기에 이루어진 거예요. 유우에게 있어서 에이스는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와도 같습니다. 유우는 쿵쿵 뛰는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잠에 들었어요.

에이스는 복잡한 표정을 한 채로 다음 날 돌아갔습니다. 유우는 루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그런 에이스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 했어요. 그대로 맞이한 개학, 학교는 다시 붐비게 되었지만 유우는 이 순간이 이전처럼 기다려지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왁자지껄한 친구들 없이도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게 가능해졌으니까요. 이번에야말로 루프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놀랍게도 유우는 모든 것이 새로워 보이기 시작합니다. 늘 가던 학교, 늘 걷던 길, 몇천 번이고 돌려봐 이제는 내용을 다 외운 교과서들 유우는 이대로 진급하고, 가능하다면 다른 선배들처럼 학외 연수를 갈 수도 있고, 어쩌면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 실낱같은 희망은 순식간에 불어나서, 유우를 행복에 퐁당 빠뜨려요.

하지만 에이스는 그런 유우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 날 영화를 본 이후로부터 갑자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거든요. 유우가 밝아진 건 좋습니다. 하지만 에이스의 바운더리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 같다는 느낌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어요. 그간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고 그렇게나 노력했는데, 유우는 아주 가볍게 그 선을 넘어 자신의 세계로 뛰어들어 버렸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 날 낡은 기숙사를 찾아가지 말 걸,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영화를 보여주지 말 걸. 이럴 줄 알았다면 유우에게 특별한 나날을 만들어주지 말 걸. 에이스는 자신이 제공하는 '특별함' 이, 유우가 루프 중에 있었기에 특별하게 느껴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루프에서 벗어난 이상, 에이스와 함께하는 나날은 더 이상 유우에게 특별하지 않아요. 유우에게는 매일이 새로우니까요. 에이스는 유우가 자신을 특별한 상대로 여겨주길 바랍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유우를 토끼굴 속에 두고 자신만을 바라보게 할 걸 그랬습니다 그런, 조금은 무거운 질투가 에이스의 마음에 내려앉아요.


추가질문


Q. 이후 유우가 에이스에게 호감을 많이 드러내나요?
A. 아무래도 에이스는 동급생이기도 하고, 붙어다니는 시간이 많아서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의지한다거나 많이 편하게 대하고 있어요. 에이스는 이걸 알기 때문에 유우는 자신을 믿고 있다고 좀 우쭐해 있습니다. 친한 친구에게 의지받는 건 기쁜 일이니까요. 동시에 유우는 자신이 루프에서 벗어난 원인이 에이스인걸 알고서 확실하게 호감을 표시해요. 일종의 감사를 전하는 것과도 같달까요. 그런데 이게 에이스에게는 좀 갑작스러워서, 에이스는 유우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착각하거나 겹쳐보고 있다고 오해합니다. 그래서 유우가 고백했을 때도 구태여 거절한 모양이네요.

Q. 에이스의 질투는 티가 많이 나는 편일까요?
A. 티가 많이 나요. 에이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요. 들뜬 유우에게 오늘 기분 좋아 보인다고 괜히 투덜대거나, 왜 오늘은 자기랑 같이 밥 안 먹느냐던가 상당히 사소하고 유치한 이유로 질투해요. 사실 에이스도, 그간 유우의 일순위였는데 갑자기 차례에서 벗어난 듯한 기분이 영 찝찝합니다. 완전 어미 닭을 쫓는 병아리처럼 굴던 게 하루아침에 곁을 떠나 하늘을 날고 있는 걸 보는 기분이에요. 처음에는 유우가 아닌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니까요.
이를 유우가 눈치채는 덴 시간이 좀 걸리지만 만약 알아차리게 된다면 에이스도 자신과 같은 마음인 줄 알고 고백하게 됩니다. 하지만 에이스는 유우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고 내색하진 않았지만, 유우는 제법 상처받는다고 해요. 때문에 당분간 에이스를 퉁명스럽게 대하기도 합니다. 

질투 에피소드라고 하면, 유우는 그동안 에이스를 굉장히 따르는 느낌이 없지않아 있었어요. 루프 속에서 에이스만이 가장 먼저 유우에게 말을 걸어 주었으니까요. 때문에 그림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상대였습니다. 그러나 루프가 끝났음을 인지한 후, 유우는 조금 더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평소 이야기를 나눠 보지 않은 친구 옆으로 자리를 옮겨 보기도 하고, 에이스가 추천해주지 않았던 새로운 메뉴에 도전해보기도 하며 조금씩 '유우' 만의 삶을 만들어 나갑니다. 그런데 에이스는 이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자신이 추천해 주지 않은 나폴리탄을 먹고 있는 유우에게, '그거 맛있나 봐?' 라고 톡 쏘아붙인 적이 있습니다. 유우는 순간 맛있다고 긍정했고, 에이스는 그대로 일어서서 식당을 나가버렸어요. (유우:아무고토모름) 에이스는 나중에 자신이 어린애 같았다는 걸 인정했지만, 이를 유우에게 사과하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마음이 시끄러운 모양이네요.

Q. 유우의 고백을 거절한 뒤의 둘의 모습은 어떨까요?
A. 고백을 거절한 후로부터 급격하게 저주가 시작되어서 바로 뒷작업을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자신이 왜 유우만을 바라보고 있는지, 유우에게 이유 모를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는 점을 서서히 잊습니다. 유우는 그런 에이스의 변화를 보며, 드디어 올 게 왔다고 생각하고요.
에이스는 달라진 유우를 보며 원래 애가 이렇게 활발했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직접적인 원인을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동시에 유우에게 살짝 찝찝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왜인지는 모르면서-괜히 유우에게 너스레를 떨며 좀 더 챙겨주려고 해요.
정작 이러고 나중에 후회함

신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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